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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학도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4 2007.06.07

이것은 최근 뉴스나 많은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는 기술유출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지난 4년간 공부하며 느꼈던 내 감정들에 대한 자기위안일지 모른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여우비님의 포스트를 읽고 '맞아, 나도 비슷한 고민을 몇 년간 해야했었지.'라며 두서없이 써내려가본다.

나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 관심사는 다방면에 걸쳐있어서 특별히 '꼭 무엇이 되고싶다'는 꿈은 없었다. 그저 내 꿈은 죽기 직전까지 되도록 많은 공부를 내 힘으로 해보는 것이었다. 문학을 매우 좋아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때로는 악기를 마음대로 두드리며 나만의 노래를 작곡하는 것이 내 소소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정말 내가 갈 길 하나만을 선택해야했고, 주변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전공을 택했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리 뜬금없는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과학 역시 좋아했고, 특히 물리의 전기파트를 아주 재미있어 했으니까. (직접 배우고보니 깊이는 비교할수도 없었지만)

들어가자마자 배우기 시작했던 전공기초 과목들은 참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더 우스운 것은 나는 그 지루한 몇몇 과목들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고등학교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더 틀에박힌 수업을 대학에서도 듣고있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다. 1학기를 마치고 나는 진지하게 전과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그 때 전과신청서에 사인하지 못했던게 실수였는지 아니면 잘했던 것인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시류를 반영하지 않는 교수님들의 교수방식이었다. 나는 모든 학문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미적분과 몇 가지 툴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도 다 인간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공부에서 '인간'은 배재되어있고, 온갖 수식이 우선이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공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복잡하고 긴 맥스웰 방정식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을 향상시켰는지 혹은 응용 가능한 부분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닌- 그저 칠판 한가득 풀이를 하는데에 급급한 모습은 참... 답답하다.

언젠가 선배와 전공과 적성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선배는 '우리나라에서 적성같은 건 없어. 있다면 돈걱정에서 자유로운 몇몇에게 해당되는 얘기겠지. 그냥 하는거야. 이유는 없고, 그냥 발을 들여놨기 때문에 하는거야. 중간에 다른 길로 과감히 전향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선배, 그래도 공부를 억지로 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하는 공부를 사랑하고 즐겨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잖아요. 그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 말이예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우리나라에서 공학도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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