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여자

from Her Dream 2012. 10. 4. 15:51

지나온 내 웹 상의 이력을 돌이켜보니 나는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여자구나. 여기 저기 기웃기웃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고, 직장이나 학교처럼 눈에 보이는 소속에는 꽤 충실하면서도 그 밖에 내 재량껏 얻어갈 수 있는 인간 관계나 소소한 행복 같은 것을 느낄 감성적인 여유가 없는 듯. 못된고 슬픈 여자네.

포스트들도 보면 항상 “아 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내게 사랑을 주는 그들에게 나도 사랑을 줘야겠다”하고 말만 했지 실천에 옮긴 건 없고, 진실되게 반성 좀 해야겠다. 뭐 하나 감사할 줄 모르고 타인에게는 잘 하는데 정작 내 사람과 나에게는 한 없이 모진 나는 정말 방구석에 쳐박혀서 진지하게 내 삶에 대해 돌아보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죄하는 시간을 좀 가져봐야겠다. 이번에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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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 is difficult.

from Her Dream 2008. 8. 24. 20:27
"Love is difficult. For one humanbeing to love a another humanbeing, that is the most difficult task that's been trused to us, the final test and proof, the work for which all other work is merely preparation."

from Letters to a Young Poet, by Rainer Maria Ril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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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호에서의 면담

from Her Dream 2008. 8. 17. 22:54
흔히 생각했던 것 처럼 가슴이 아프거나, 미치도록 혼란스럽다거나.하지는 않았어요. 아, 그저 앞으로 어떤 부분들에서의 삶은 순탄치 않겠지.라는 생각은 했지요. 사소한 걱정은 그냥 거기까지였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 같은 혼돈은 그 날의 내게는 없었거든요.

- How do you feel?
- Safe...

말 그대로였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나는 그 순간이 그렇게 느껴졌거든요. 그녀가 내 곁에 있어서, 그리고 아무도 우리를 방해하지 않아서. 벨이 울리기 직전까지 나는 행복했어요.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죠. 길게 누워 있던 그녀가 휴대폰을 끌어당겨 액정을 주시했어요. "Steven" 내 쪽에서는 액정에 떠오른 이름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요. 전화를 건 쪽은 Steven이라는 것을요. 그녀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어요. 가벼운 하품을 하면서 그녀는 휴대폰을 이불 밑에 넣어두고 기지개를 폈죠. 아름다웠어요.

- I'm hungry...
- You...?
-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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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X씨가 참석하면 나는 안갈래요. "
" 아니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
" 그냥요... 아무래도 XX씨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

나의 직장 생활에서 편가르기 만큼은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것도 내가 장기 출장으로 회사에 없는 시기에! 도대체 그녀는 왜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실 그녀가 나를 달갑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아무리 생글생글 웃어도 사람의 진심은 좋은 식으로건 나쁜 식으로건 전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실 마주칠 기회가 잦지 않았기 때문에, 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업무 자체가 다른데 뭘... 그런데 최근 알게 된 얘기에서 난 좀 벙찔 수밖에 없었다. 글세, 그녀가 나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이유가 -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나.

나한테 함부로 저런 말을 해서는 안된다. 내 상식에서는 " 그녀는 레즈비언이 분명해. 내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거라구. "라고 생각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렇게 늘 틱틱거렸구나. 그럼 진작 말을 하지. 저는 꽤나 관대한 성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것쯤은 일도 아니예요. 아 맞다, 그런데 이건 좀 생각 해봐야 겠네요. 당신은... 내 타입과는 거리가 좀 멀군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녀가 나를 질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좀 인기가 많긴 하지만은, 밉보일 행동은 별로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상사로부터 칭찬을 듣고, 팀장은 다른 팀 프로젝트에 묶여 있는 나를 빼내지 못해 안달이고, 회사 밖에서 동료들과 사교 모임을 좀 자주 갖기는 하지만... 그런 것도 없다면 대체 무슨 재미로 산단 말인가. 그러니까 질투가 나면 내게 고백을 해! 정중하게 거절해 드릴게요.



오랜만에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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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안정을 취하셔야 해요. 계속 그렇게 몸관리를 하다가는 신체 나이가 실제 나이보다 많아질 거예요. 시도 때도 없이 피곤을 느끼고, 무엇보다 능률도 떨어지구요.

이건 뭐... 24세의 아리따..(ㅂ지는 않지만=_=) 어쨌든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꽃같은 나이에 듣기에는 너무 서글픈 얘기인거잖아. 거지같아. 거지같아. 거지같아. 병원에서는 늘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한다. 뭐 말만 들어서는 완전 멀쩡한 곳이라고는 없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건 아니고. 본의 아니게 독립해서 혼자 살게 된지라, 최근 두달여간 내 생활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아니, 아직도 엉망인 것 같다. 드라마에 나오는 깔끔한 집은 온데간데 없고, 쓰레기 만들기 싫어서 집에서 음식이라고는 절대 먹지 않고 [...] 주말에 집에 다녀올 때마다 싸주는 음식은 존재 자체를 금방 까먹어, 상하거나 썩게 내버려두고... 이사 온 첫 날, 생수를 5통 사뒀는데 어제 베란다를 보니까 그동안 한 통을 먹었다. 고작 집에서 먹은 물이라고 1리터가 다라니... 지금까지 쓰레기는 10리터 봉투로 한 봉지 나왔는데, 그것도 꽁꽁 싸매두고 매일 버려야지 버려야지 하면서 현관 앞에 그대로 두고 있다. 어제는 씻고 방바닥에 앉아서 휘익 둘러보고는, '아... 정말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하고는 청소를 좀 하는 척 하다가 졸려서 또 금방 자버렸다. 무계획, 무개념으로 살아가고 있나보다 정말.

그래도 한동안 심했던 우울증은 사라졌다. 아, 정말 최근에는 너무 우울했어. 동네라고는 쥐꼬리만해서 남자들만 득실거리고 (그것도 술취한 아저씨들만), 화장한 얼굴도 상큼하지 않은 짧은 미니스커트의 언니들이 배회하는 거리에는 별로 나다니고 싶지 않았다. 뭐 그것도 슈퍼총각이랑 좀 친해지고, 통근버스 기사 아저씨랑 인사 좀 나누고 하니까 좀 나아지더라. 그러고보니 중요한 건 소통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늘 받기만 했던 내 삶의 방식을 이젠 정말 바꿔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는지[...농담...] 나는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헌데, 늘 받은 만큼 베풀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산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천성이 본래 이런 것이니 어쩔 수 없구나...하고 체념 했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이제라도 나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만... 보고 싶은 좋은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 아직 내 곁에 있어줄 때 잘 하자,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자.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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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내가 정말 보잘것 없는 상황에 처해있어도 나만은 적어도 나 자신을 사랑해왔었다고 자부했다. 그래, 너는 그나마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넌 잘하고 있는거야.

슬럼프는 언제나 불시에 찾아오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외롭고, 서글프고 짜증이 난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된다면. 누가 나를 사랑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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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찾은 이 공간의 마지막 포스트는 2007/06/23 14:24이었다. 갑자기 기묘한 느낌이 몸을 휘감는다. 나는 지난 세달동안 무엇을 하고있었나.

취직을 했다. 한달즈음 지나서 내 프로젝트가 생겼다.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일을 했다. 친구도 몇 번 만났다. 만나서 밥을 먹고 피곤해서 금방 헤어지곤 했다.

블로그나 까페를 개설하는 것이 쉬워지면서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만 살아있는 공간은 그리 많지 않다. 간혹 우연히 발길이 닿은 곳이 아주 오랫동안 멈춰진 시간 그대로라면 나는 어쩐지 우울해진다. 그것은 귀찮아서.일수도 있지만, 그마만큼 그의 여유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아, 나는 왜! 주말만 되면 우울해지는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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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서 많이 본 제목이다. (웃음) 이것은 홍세화씨처럼 인천을 논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새벽 5시에 갑자기 걸려온 아빠의 전화에 대한 얘기다.

요즘 잠이 없어져서인지 이상하게 새벽에 눈이 떠지기가 일쑤인데, 어제도 어김없이 이른 시간에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순간 울리는 전화소리, 곧바로 받은 전화너머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 딸, 안잤어?
─ 아니 방금 일어났어.
─ 그럼 이 손님이 어디 가려고 하는지 좀 알아봐.
─ 응....?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행선지는 아빠보다 내가 더 잘 아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아빠는 종종 내게 길을 물으러 전화를 하실 때가 있었다. 나는 또 잘 모르시는 곳이겠거니 하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수화기를 타고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 Hello?

허... 이건 뭐지;; 그녀는 외국인이었다. 잠시 당황 [...] 곧 나는 그녀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고, 그녀는 공항으로 갈 버스를 타겠노라고 했다. 다시 아빠에게 '공항가는 버스 타려고 한데.' 했더니 아빠는 '아, 나 거기 알아.' 하셨다.

우리집에서는 가족에게 관련된 모든 일이 9시 뉴스보다 더 중요한 소식이다. 엄마와 동생은 '하하 아빠도 생활영어를 배워야겠어.'라면서 신기해했다. 아빠가 들어오신 뒤 가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일에 대해 물었다. '그 여자가 한국말은 아예 몰랐어?', '공항가는거보니까 집에 가나보다.' 등등의 얘기들...

아빠의 말인즉슨 이랬다. 그 여자를 택시에 태워준 남자도 외국인이었는데, 그도 한국말은 제대로 못했고 그냥 간단히 '송내역'이라고만 얘기했단다. 그래서 여자를 태우고 송내역으로 가면서 아빠가 말을 걸었는데, 여자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아빠는 여자가 한국말은 전혀 못한다는 것을 직감했고, 곧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역에는 왜 갈까. 한국말을 하나도 모르는데 지하철은 탈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기 시작하신거다. 혹여나 내려준 다음에 어두운 거리에서 길을 잃을까봐 걱정하신 끝에 내게 전화하셨다는 아빠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모두 웃었다.

─ 아빠, 몰랐다면 택시 태워준 친구한테 전화했겠지.
─ 내가 그 생각까지 했나. 너랑 나이도 비슷한 애였는데, 걱정되잖아. 그것도 타지에서.

아빠는 공항버스가 서있는 바로 앞에서 여자를 내려줬다. 여자는 연신 Thank you라고 말하며 팁을 얹어 요금을 지불했는데, 아빠는 팁을 다시 돌려주며 '공항에서 맛있는 거 사먹어.'라고 하셨다.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웃으며 다시 한 번 고맙다고 말하고 버스에 올랐다.

동생이 웃으며 '그 팁 받아도 되는건데.'하자, 아빠는 '아빠도 알아. 그냥 안받은거야. 가끔 한국 생각하면 인천의 택시기사 생각하지 않겠냐.'하셨다. 하하하하 가족들은 다시 웃었다. 응 맞아 그거 기분좋은 일이네. 아빠는 한마디 덧붙이셨다.

─ 캐나다에서 왔다더라.
─ 그건 어떻게 알았어?
─ 손사래치면서 "캐나다"라고 했거든.

하하하 오랜만에 유쾌하게 웃었다. 그녀는 지금쯤 집에 도착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의 택시는 오늘도 인천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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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

from Her Dream 2007. 6. 20. 00:06
그저 신변잡기식 포스팅은 피해보려 노력하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그다지 포스팅할 거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개인적으로 단순히 '오늘은 뭐하고 뭐하고 뭐했다.'와 같은 포스트는 내 타입도 아닐뿐더러, 이상하게 쓰다보면 신세한탄이 되어버려서 [...]

불과 몇달 전만해도 참 쓸데없는 것까지 생각해서 뭔가 끄적거릴 거리가 많았지만, 요즘은 오로지 시험시험시험의 연속이니 별달리 생각하는 것도 없고 특별히 읽는 책도 없어져서 바보가 되어가는 기분을 느낄 뿐이다. 적어도 하루에 하나씩 영작을 해보려했던 다짐도 저 멀리 사라진지 오래 [...]

서른안에 나는 Fluent in English가 될 수 있으려나, 다른건 몰라도 그 일은 꼭 서른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싶은데 / 요즘같아서는 이도저도 안되겠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정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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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Her Dream 2007. 6. 15. 13:21

─ 이것은 장래희망이 아니라 밤에 꾸는 꿈에 대한 얘기다.

나는 꿈을 꽤 자주 꾸는 편인데(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일년 중 3/4 이상은 꿈을 꾼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기억나는' 꿈을!), 때로는 꿈이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을 암시해 줄 때가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나는 '영매'나 '예지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미래의 일을 꿈에서 보는 것은 아니지만, 꿈이 대강의 분위기 정도를 암시해 주는 건 어렵지 않게 겪을 수 있다.

지난 밤에도 어김없이 나는 꿈을 꿨다.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아무래도 나는 홈스테이로 간 것 같았는데, 그 집에는 이미 4명의 유학생이 더 있었다. (하숙집 정도의 개념이었던 것 같다.) 그 곳에는 엄격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빈 책상에서 공부하되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일어나야 한다던지, 성적이 떨어지면 더 이상 그 곳에서 묵을 수 없다던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홈스테이는 없지만;) 어쨌든 들어간 첫날부터 나는 엄청난 향수병에 괴로워했고, 그것을 이겨보고자 공부에 매진하기위해 책상 앞에 앉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날 무렵, 갑자기 민방위 훈련마냥 '위이이이잉~'하고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뭔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 내게 주인 아주머니는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들어왔는데 곧 컴퓨터가 폭발하니까 얼른 나가야해!"라고 했다. 나는 '이런 건 영화에서나 있던 일이잖아! 말도안돼!'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 곳은 미국이고 나는 아주머니와 유학생들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었으므로 따라서 그 곳을 탈출했다. =_= 곧 폭발은 정말 일어났고, 나는 한국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 상황을 설명했다.

나름 스펙타클한 꿈이어서 [...] 상당히 피곤했다. 할 일도 많은데 왜 이렇게 뒤가 구린 꿈만 꾸는거지 요즘. 언제나 내 포스트는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해지는데 오늘도 역시[...] 어쨌든 10년안에 미국으로 유학 갈 생각을 해봤는데, 어쩐지 이건 안 좋은 예감;;; 목적지를 전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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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바로 그게 내 삶의 방식이예요.〃

파니는 별로 행복한 여자는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물론 그녀는 정기적으로 돈을 주는 직장이 있고, 그리 좋지는 않지만 늘 자신을 반겨주는 집도 있다. 게다가 귀여운 외모를 가지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귀여운 얼굴을 하고 그녀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해골모양의 귀걸이를 걸고 앉아서 푸념을 늘어놓는 모습이란 … 사실 나는 그 첫부분에서 큰 소리로 웃어제꼈는데 그 이유는 그녀의 고민하는 모습이 한 때 내가 전전긍긍했던 모습과 정확하게 오버랩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바로 이렇게 말했다.

여자가 서른 넘어서 남자를 만나는 것은 원자폭탄 맞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래요.

그녀는 어째서 늘 불안해하고 생에 대한 권태를 느꼈던걸까. 그녀는 '죽음을 준비하는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 모임은 모임의 이름과는 성격이 다르다. 잘 살펴보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포함한 모임의 참석자들은 생에 대해 좀 더 애착을 갖기 위해 모임에 참석한다. "나는 아름답다. 사랑받고 있다."를 밤마다 외치는 파니는 불행하게도 잘못된 방법을 행하고 있었다. 지루하기 짝이없는 그녀의 인생에 돈을 벌기위한 오르페오의 거짓말은 일종의 희망이었다. (결국 그 사랑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후에 깨닫지만...) 그녀는 왜 "소소한 일상을 나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그 건물관리인에게는 할 수 없었던걸까.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그녀는 생에 대한 의지를 사랑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제로 서른이 넘은 싱글에게는 별 문제가 없지 않은가. 참 재미있는 것은 그녀의 생에 대한 태도를 바꿔준 계기가 바로 '오르페오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오르페오의 "이 잔의 반이 비어있니, 반이 차있니."라는 말은 쇼펜하우어의 "개개인의 결단에 따라서 앞으로의 시간이 달라진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어쩌면 그녀는 오르페오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만 "왜 내게 거짓말을 했니."라고 되묻기전에 자신의 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먼저 깨달았던건 아닐까.

더 늦기 전에 빨리 남자를 만나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자 비로소 그녀는 그녀를 사랑하는 이를 만날 수 있었다. 아마 이제 그녀는 충분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랑만으로 그녀의 삶을 행복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 또 사랑이 늘 달콤하지는 않다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추구할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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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최근 뉴스나 많은 블로그에서 다루고 있는 기술유출 사건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어쩌면 지난 4년간 공부하며 느꼈던 내 감정들에 대한 자기위안일지 모른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여우비님의 포스트를 읽고 '맞아, 나도 비슷한 고민을 몇 년간 해야했었지.'라며 두서없이 써내려가본다.

나는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부터 내 관심사는 다방면에 걸쳐있어서 특별히 '꼭 무엇이 되고싶다'는 꿈은 없었다. 그저 내 꿈은 죽기 직전까지 되도록 많은 공부를 내 힘으로 해보는 것이었다. 문학을 매우 좋아하고, 다른 나라의 문화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때로는 악기를 마음대로 두드리며 나만의 노래를 작곡하는 것이 내 소소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나는 정말 내가 갈 길 하나만을 선택해야했고, 주변에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 전공을 택했다. 사실 따지고보면 그리 뜬금없는 결정은 아니었다. 나는 과학 역시 좋아했고, 특히 물리의 전기파트를 아주 재미있어 했으니까. (직접 배우고보니 깊이는 비교할수도 없었지만)

들어가자마자 배우기 시작했던 전공기초 과목들은 참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더 우스운 것은 나는 그 지루한 몇몇 과목들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고등학교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더 틀에박힌 수업을 대학에서도 듣고있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게 느껴졌다. 1학기를 마치고 나는 진지하게 전과에 대해 고민했다. 결국 그 때 전과신청서에 사인하지 못했던게 실수였는지 아니면 잘했던 것인지는 아직은 모르겠다.

내가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시류를 반영하지 않는 교수님들의 교수방식이었다. 나는 모든 학문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미적분과 몇 가지 툴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도 다 인간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하는 공부에서 '인간'은 배재되어있고, 온갖 수식이 우선이었다. 바로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공학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복잡하고 긴 맥스웰 방정식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을 향상시켰는지 혹은 응용 가능한 부분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아닌- 그저 칠판 한가득 풀이를 하는데에 급급한 모습은 참... 답답하다.

언젠가 선배와 전공과 적성에 대한 얘기를 했었다. 선배는 '우리나라에서 적성같은 건 없어. 있다면 돈걱정에서 자유로운 몇몇에게 해당되는 얘기겠지. 그냥 하는거야. 이유는 없고, 그냥 발을 들여놨기 때문에 하는거야. 중간에 다른 길로 과감히 전향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갑자기 슬퍼졌다. 선배, 그래도 공부를 억지로 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하는 공부를 사랑하고 즐겨야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잖아요. 그냥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 말이예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 우리나라에서 공학도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그리고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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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앞에서

from Her Dream 2007. 6. 1. 23:07
무덤 앞에서 ─ Emily Clark

내 무덤 앞에서 눈물짓지 말라.
난 그 곳에 없다.
난 잠들지 않는다.
난 수천개의 바람이다.
난 눈 위에서 반짝이는 보석이다.
난 잘 익은 이삭들 위에서 빛나는 햇빛이다.
난 가을에 내리는 비다.
당신이 아침에 고요속에서 눈을 떴을 때,
난 원을 그리며 솟구치는 새들의 가벼운 비상이다.
난 밤에 빛나는 별들이다.
내 무덤 앞에서 울지마라.
난 거기에 없다.
난 잠들지 않는다.


나중에 내 묘비에 이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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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영어공부에 열을 올릴 무렵, 나와 꽤 친분이 두터웠던 어느 외국인 선생님은 내게 Celine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따지고보면 이건 영어이름이 아니라 유럽, 그 중에서도 프랑스에서 흔한 이름인데- 그 선생님은 그냥 나를 그렇게 부르기를 좋아했다. 나중에야 알게된 사실인데, 그녀도 나처럼 비포선라이즈를 좋아했고 나를 알게되면서 내가 그 영화속의  셀린느와 닮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건 엄청난 과찬이었다. 나는 그녀처럼 예쁘지도 않고, 그다지 사려깊지도 않다.

어쨌든 이후로 나는 외국인 친구들과 만날 때는 의례히 Celine이라 나를 소개했다. 처음에는 그저 그들에게 친숙한 것이 좋겠거니.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부를 때마다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친구가 내게 진지하게 물었다. "나는 네 한국이름이 더 좋아. 네 이름에는 멋진 의미가 담겨있거든. 네가 괜찮다면 너를 한국이름으로 부르고 싶은데, 안될까?" 아, 순간 나는 너무 기뻤다.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은것처럼! 그래 내 이름에는 멋진 의미가 깃들어있었지.

한 때는 내 이름이 너무 흔해서 싫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성씨에나 내 이름은 늘 있었고, 심지어 같은 이름의 친구와 짝꿍을 해 본 적도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 친구는 내 인생 최고의 베스트프렌드가 되었다.) 때때로 이것에 대해 불평하는 내게 부모님은 말씀하셨다. "이름이 같다고 너와 그 아이들이 같은 건 아니야. 네 스스로 너를 만들어가는거지, 이름이 너를 만드는 건 아니거든."

네, 이제 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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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blog) : Web(웹)과 Log(로그)를 합친 낱말로, 스스로가 가진 느낌이나 품어오던 생각, 알리고 싶은 견해나 주장 같은 것을 웹에다 일기(로그)처럼 차곡 차곡 적어 올려서, 다른 사람도 보고 읽을 수 있게끔 열어 놓은 글모음이다. 많은 사람이 블로그를 인터넷 문화를 바탕으로 태어난 한 사람 (또는 홀로) 매체의 시작으로 본다.

내가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블로그가 오픈되어 있다고 해서 누군가가 내게 가하는 공격을 당연시해야 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물론 이 '공격'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대체적으로 내가 수긍하기에 불쾌한 덧글이나 엮인글정도로 풀이하는게 무난하겠다.

사실 몸담았던 곳은 몇 번 바뀌었지만 이런 웹페이지를 가지고 있었던게 10여년정도 전부터인지라 그간 몇몇 사건들이 있었다. 나는 천성상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성격도 아니고 아주 관심있는 분야가 아니고서야 댓글을 남기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지인들 말고는 웹상에서 누군가와 부딪히는게 거의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쓴 이야기에 반대하고 불쾌감을 여과없이 표현했었는데, 어렸던 나는 그거 자체가 너무 싫었고 상처받았었다.

뭐 다 지난 얘기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심각한 일도 아니지만, 그 이후로 어떤 글을 올릴 때 누군가에게 당할지도 모르는 '공격'에 대해 민감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나는 그저 읽기에 무난한 내 얘기를 주로 했는데- 언제부턴가는 그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정말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에는 극단적이고 음란하며, 약간은 거북한 이야기도 있는데 나는 단지 미지의 무엇인가가 두려워서 웹에서의 나의 활동을 스스로 검열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얼마나 한심하고 우스운 행동이란 말인가!

한동안은 마치 내 안의 자아가 분열되는 듯한 기분에 환멸을 느꼈었다. 나는 대체 누구를 위해 포스팅하는 것인가. 남을 위해? 물론 그것은 아니다. 나는 타인의 삶을 위해 포스팅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꽤나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이런 방면으로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기 힘들다. 진실된 대화로 감정을 분출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에 블로그라는 공간은 그것을 도와주는 하나의 도우미 역할이기에 나는 철저히 나를 위해 포스팅한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에 올린 것들은 내 것들이니 절대, 누구도 태클걸지 마시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분명히 내 생각에는 많은 문법적, 윤리적 오류가 있을것이고- 나는 스스로 몰랐었던 그 오류들에 대해 누군가 지적해준다면 감사할거다. 그리고 오픈블로그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의견을 교환하는 것 자체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의를 제기하는 방식에 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힌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도) 한줄짜리 욕설에 가까운 비방을 성의없이 던져놓고 사라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자신의 생각이 진리인양 떠드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10개도 넘는 장문의 댓글로 테러를 하는 사람은 무엇이란 말인가! (차라리 메일을 보내지.) 모르겠다. 모르는사이에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걸지도...

아무튼 나를 잃지않으면서 나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는 것, 나는 그 방법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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